성적표가 늦게 도착하는 문제
대부분의 회사는 연말 평가를 당연하게 여긴다. 1년 치 성과를 모아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으로 연봉과 승진을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시차가 숨어 있다.
3월에 저지른 실수를 12월에 지적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프로젝트는 이미 끝났다. 담당자는 이미 다른 팀으로 옮겼다. 고칠 기회가 사라진 뒤에야 피드백이 도착한 것이다.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같은 불만이 쌓였다. 평가 시즌이 되면 며칠씩 걸려 자기평가서를 쓰고, 매니저는 등급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느라 시간을 쓴다. 정작 평가서에 적힌 문장들은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뿐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등급이 걸려 있으면 사람은 솔직해지기 어렵다. 동료의 실수를 지적하고 싶어도, 그 말이 상대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줄까 봐 에둘러 말한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정직한 말이 나오지 않는 셈이다.
등급을 지우고 대화를 남기다
넷플릭스가 택한 방식은 단순했다. 공식 평가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실시간 대화를 채워 넣었다.
정확히 말하면 넷플릭스가 없앤 건 '평가'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계속 이루어진다. 킵 테스트 자체가 상당히 냉정한 성과 판단이다. 넷플릭스가 없앤 건 평가하는 '날'이다. 12월의 특정 시즌까지 기다리지 않고, 판단이 필요한 그 순간에 바로 말한다는 뜻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 회의가 이상하게 흘러갔으면 다음 날 넘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짚는다. 스톤의 말을 빌리면, 목표는 "연속적이고 시의적절하며 솔직한 피드백"이 일상의 리듬이 되는 것이었다.
넷플릭스에는 연 1회 360도 피드백 프로세스가 남아 있다. 다만 이건 성적을 매기는 자리가 아니라, 목표를 다시 세우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말을 주고받는 자리로 설계됐다. 넷플릭스가 정리한 피드백 원칙에는 "돕기 위해 말하라"는 항목이 있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가 더 잘하도록 만들기 위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킵 테스트가 있다. 대답이 "아니오"에 가까워지는 순간, 그 대화는 미뤄지지 않는다. 곧바로 당사자에게 전해지고, 넷플릭스는 후한 퇴직금을 제시한다. 맞지 않는 자리에 오래 붙잡아두는 게 서로에게 손해라는 계산이다.
흥미로운 건 이 테스트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스톤에 따르면 팀원들도 매니저를 상대로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 사람 밑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가. 평가는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지 않는다.
왜 이 방식이 통했을까
핵심은 정보가 움직이는 속도였다.
문제는 어느 조직에나 생긴다. 차이는 그 문제가 얼마나 빨리 수면 위로 올라오느냐다. 피드백을 연말 평가에 의존할수록, 중요한 정보가 제때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은 커진다. 그사이 오해는 쌓이고 프로젝트는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굴러갈 수 있다. 반대로 문제가 생긴 그 주에 바로 대화가 오가면, 조직은 훨씬 빨리 방향을 튼다.
등급과 피드백을 분리하면 피드백의 목적 자체가 바뀐다는 점도 크다. 상대를 심사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를 돕기 위한 말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더 쉽게 입을 연다.
이 모델에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아무 회사에서나 작동하는 건 아니다.
넷플릭스는 업계 최상위 수준의 보상을 지급한다. 후한 퇴직금을 감당할 재무 여력도 있다. 애초에 이 정도의 솔직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 채용하려 애쓴다. 실제로 일부 전직 직원들은 이 문화를 두고 "숨 쉴 틈 없이 긴장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상시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동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진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잘 보이지 않는 함정이 하나 있다.
생각해보자. 어느 팀원이 상사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지금 바로 말해도 될까, 아니면 연말 평가서에 적어 넘길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후자를 택한다. 지금 말하면 껄끄러운 사람이 되지만, 평가 시즌에는 어차피 한 번은 말할 기회가 오니까.
그런데 평가서 자체를 없애버리면, "나중에 적어서 넘기자"는 선택지가 사라진다. 남는 건 두 가지뿐이다. 지금 말하거나, 영영 말하지 않거나.
여기서 조직의 진짜 상태가 드러난다. 지금 말해도 안전한 조직이라면 사람들은 지금 말하는 쪽을 택한다. 반면 지금 말하면 밉보이는 조직이라면 사람들은 그냥 입을 닫는다. 예전에는 그나마 연말 평가서라는 배출구가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넷플릭스식 모델을 따라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게 있다. 안 좋은 소식이 상사 귀에 들어가기까지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한 사람이 나중에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는지. 이 두 가지가 이미 괜찮은 조직이라면 평가서를 없애는 건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다. 하지만 이게 안 되는 조직이 평가서만 없앤다면, 솔직한 피드백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유일한 배출구마저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