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 AI를 잘 쓰면 몸값이 오른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말은 사실에 가까웠다.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쓰고, 보고서 초안을 빠르게 뽑아내고, 이미지를 원하는 대로 생성하는 것 자체가 눈에 띄는 능력이었다. 그 능력만으로도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 안을 둘러보면, AI를 안 쓰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실제로는 달랐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모두가 같은 도구를 잘 쓰게 되면, 그 도구를 잘 쓰는 것 자체는 더 이상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엑셀을 예로 들어보면 이해가 쉽다. 엑셀 함수를 잘 다룬다고 높은 연봉을 받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엑셀은 실력의 증거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되었다.
AI 활용 능력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프롬프트 작성, 요약, 초안 작성 같은 기술은 학습 속도가 빨라서 보편화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A와 B의 차이는 “AI를 쓸 줄 아느냐”에 있지 않았다. 둘 다 AI를 썼다. 차이는 AI에게 일을 맡기기 전에, 그 일을 얼마나 정확히 쪼개고 검증했느냐에 있었다.
두 사람이 AI를 대하는 방식
A는 AI를 작업 도구로 썼다. “이거 해줘”라고 요청하고, 나온 결과를 그대로 받았다.
B는 AI를 업무 시스템의 일부로 썼다. 먼저 문제를 “시장 규모 확인 → 경쟁사 가격 비교 → 고객 불만 분석 → 리스크 정리”로 나눴다. 각 조각을 어떤 AI에게, 어떤 순서로, 어떤 정보를 주고 맡길지 결정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그걸 그대로 믿지 않고 교차 검증했다.
A는 AI에게 일을 시켰고, B는 AI가 일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흥미로운 건 이 차이가 어디서 나오느냐다. B가 잘한 건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업무 분해 능력이었다. AI에게 일을 맡기려면, 먼저 내가 그 일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마케팅 전략 짜줘”라고 뭉뚱그려 요청하는 사람과, 시장·고객·경쟁사·포지셔닝·채널·KPI로 나눠 각각 필요한 답을 받아내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물을 손에 쥔다.
이건 낯선 능력이 아니다. 관리자가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 하던 것과 거의 같다.
관리 대상이 넓어진다
지금까지 관리자의 일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의하고, 누구에게 맡길지 정하고, 좋은 결과의 기준을 세우고, 중간 결과를 점검하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일. 관리자가 팀원보다 그 일을 다 잘해서가 아니라, 이 다섯 가지를 잘 해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AI가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이 관리 능력의 대상이 사람에서 AI로도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직이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직접 하는가”에서 “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일을 맡길 수 있는가”로 옮겨갈 수 있다.
A와 B의 차이는 실제로도 확인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 있다. 같은 GPT-4를 준 뒤 업무 성과를 비교했는데, 결과는 그대로 나오지 않았다.
AI가 잘 다루는 영역의 업무에서는 완료한 과제 수, 속도, 결과물 품질이 모두 크게 올라갔다. 그런데 AI가 서투른 영역의 업무를 그대로 맡긴 경우에는 오히려 정답률이 떨어졌다. 같은 도구를 썼는데 결과가 반대로 갈린 것이다.
연구진은 여기서 두 가지 사용 방식을 구분했다. 하나는 문제를 쪼개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부터 직접 판단할지 나누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AI와 대화를 이어가며 작업 전체를 함께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둘 다 유효한 방식이지만, 공통점은 사용자가 AI의 한계를 어디에 두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A처럼 결과물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 실험에서 가장 위험한 조합에 가까웠다.
반론: 맡긴다고 몸값이 저절로 오르지는 않는다
여기서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AI에게 일을 넘기고 결과물을 그대로 복사하는 사람은, 사실 A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위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AI가 틀린 숫자를 가져오면 그걸 알아채야 하고, 논리가 어긋나면 고쳐야 하고, 중요한 정보가 빠졌으면 눈치채야 한다. B가 3년 전 통계를 걸러낼 수 있었던 건 AI를 잘 다뤄서가 아니라, 그 시장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일은 애초에 제대로 맡길 수도 없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전문성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이 사용되는 위치가 달라진다. 직접 모든 결과물을 만드는 데 쓰던 전문성이 이제는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의심하고, 어디에서 개입할지를 판단하는 데 쓰인다.
결국 갈리는 건 레버리지다
한 사람이 하루 8시간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에는 원래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AI는 이 한계를 넓히는 도구다.
문제는 그 넓어진 한계를 누가, 어떻게 쓰느냐다. A는 AI를 이용해 원래 하던 업무를 조금 더 빨리 끝낸다. B는 AI를 이용해 과거에는 여러 사람이 나눠 하던 일의 전체 그림을 설계하고 완수한다.
같은 시간, 같은 도구를 썼는데도 두 사람이 회사에 만들어주는 가치의 크기는 다르다. 회사가 두 사람에게 같은 값을 매길 이유는 없다.
그래서 무엇을 연습해야 할까
프롬프트를 더 잘 쓰는 연습보다 먼저 해볼 만한 것들이 있다.
풀어야 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 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작업 단위로 쪼개는 것. 어디까지는 AI에게 맡기고 어디서부터는 내가 판단할지 선을 긋는 것. 나온 결과가 좋은 결과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기준을 갖는 것. 조각난 결과물을 하나의 결론으로 통합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결정에 이름을 거는 것.
이 여섯 가지는 사실 AI 기술이 아니라, 원래부터 일 잘하는 사람이 갖고 있던 능력이다. AI는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의 반경만 몇 배로 넓혀줄 뿐이다.
지금 내가 맡은 일 중에서, 나는 그 일을 AI에게 맡길 만큼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결과물을 빨리 받아보고 싶은 것뿐일까.
그리고 하나 더. AI 덕분에 일이 빨라졌다면, 나는 그 시간으로 더 큰 일을 하고 있는가. AI로 8시간 걸리던 일을 4시간 만에 끝냈다고 몸값이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 남은 4시간으로 더 큰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레버리지가 생긴다.
AI가 내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과, 내 몸값을 높여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커리어 점선면 AI 시대의 몸값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AI를 데리고 얼마나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