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면 더 뚜렷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스탠퍼드 디지털이코노미랩 연구진이 ADP의 수백만 명 급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22~25세 근로자의 고용은 AI 노출도가 낮은 직종의 동년배와 같은 속도로 증가했을 경우보다 약 19% 낮아졌다. 이 격차는 1년 전 15%에서 계속 벌어지는 중이다. 반면 같은 직종의 숙련 근로자에게서는 이와 비슷한 격차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아직 경제 전체의 광범위한 일자리 감소를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AI의 충격이 가장 젊은 근로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신호는 뚜렷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격차를 만드는 것은 대량 해고가 아니라, 애초에 신입을 덜 뽑는 쪽이었다.
왜 유독 저연차만 밀려날까
연구자들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AI가 잘 대체하는 것은 '책으로 배운 지식', 즉 정형화되고 매뉴얼화된 지식이다. 반면 몇 년간 현장에서 쌓은 암묵적 판단력은 AI가 대신하기 어렵다. 그런데 신입이 맡는 일은 대부분 전자다. 자료를 찾고, 숫자를 정리하고, 보고서 초안을 쓰는 일. 공교롭게도 이게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과 정확히 겹친다.
기업 입장에서 이건 합리적인 계산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신입이 자료 조사와 초안 작성을 반복하며 배우던 것은 사실 그 결과물이 아니었다. 선배가 왜 이 숫자는 지우고 저 문장은 앞으로 옮기는지, 그 판단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익힌 감각이었다. 결과물만 빠르게 나오고 그 판단 과정을 지켜볼 기회 자체가 사라지면, 지금의 주니어는 10년 뒤에도 판단할 줄 아는 시니어가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기업이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IBM의 인사총괄은 최근 앞으로 3~5년 뒤 가장 좋은 성과를 낼 기업은 지금 신입 채용에 투자하는 기업이라고 말하며,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알려진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에서도 신입 채용을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다. 대신 일의 내용을 바꿨다. 개발자는 단순 코딩보다 고객과의 상호작용 비중을 높이고, 신입에게는 처음부터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하고 되묻는 역할을 맡긴다. 신입을 줄이는 대신, 신입이 배우는 방식을 다시 짠 것이다.
반면 채용 규모만 줄인 기업들은 다른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있다. 지금 저연차를 뽑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중간 관리자가 부족해지고, 그 공백을 메우려면 이미 숙련된 인력을 경쟁사에서 웃돈을 주고 데려와야 한다. 결국 저연차의 몸값을 낮춘 선택이 몇 년 뒤에는 고연차의 몸값을 오히려 밀어 올리는 구조로 되돌아온다.
이 대비가 보여주는 건 하나다. AI가 신입의 업무량을 줄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시간에 신입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회사가 그 시간을 판단력을 키우는 시간으로 설계했느냐다.
결과물을 받아쓰기만 하는 사람과, AI가 내놓은 결론에 "왜 이렇게 판단했지"라고 되묻는 사람은 몇 년 뒤 전혀 다른 실력을 갖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저연차의 업무를 없앨지, 아니면 저연차가 판단력을 쌓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할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이다.
그렇다면 신입은 어디서 배워야 할까
예전에는 일을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경험이 쌓였다. 경쟁사 자료를 직접 찾다 보면 어떤 자료가 믿을 만한지 알게 됐고, 보고서 초안을 쓰고 선배에게 수십 번 고쳐지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몸으로 배웠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배움이었다.
AI가 그 과정을 건너뛰게 해준다면, 이제 신입은 결과물을 만드는 경험보다 판단하는 경험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다.
첫째, AI에게 맡긴 일을 검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가 보고서를 만들어줬다면 그대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 왜 이런 결론을 냈는지 따져봐야 한다. 어떤 데이터를 썼고, 무엇을 빠뜨렸고, 다른 결론은 가능한지 검증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만들면서 배웠다면, 이제는 검증하면서 배운다.
둘째, 시니어의 결과가 아니라 판단 과정을 물어야 한다. "이거 한번 봐주세요"에서 끝내지 말고, "저는 이렇게 판단했는데 팀장님은 왜 다르게 보셨나요"라고 물어야 한다. 신입에게 가장 값진 것은 선배가 고쳐준 최종본이 아니라 왜 고쳤는지를 듣는 시간이다.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암묵지는 바로 그 안에 있다.
셋째, 가능한 한 빨리 실제 의사결정 가까이 가야 한다. 회의록만 쓰지 말고 회의에서 왜 그 결정이 내려졌는지 지켜본다. 고객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서 끝내지 말고 가능하면 고객을 직접 만나본다. 보고서를 만드는 데서 끝내지 말고 그 보고서가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한다.
AI 시대의 신입에게 중요한 경험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판단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는가일 수 있다. 예전에는 '일하면서 배우는 것'(Learning by Doing)이 경력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판단을 보고 물으며 배우는 것'(Learning by Judging)이 그 자리를 일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의 신입은 일을 하면서 배웠다. 앞으로의 신입은 AI가 그 일을 대신하는 만큼, 더 의도적으로 판단의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AI가 보고서를 써줬다면 검증하고, 선배가 수정했다면 왜 수정했는지 묻고, 의사결정이 내려졌다면 왜 그 결정이 내려졌는지 따라가야 한다.
앞으로 경력의 차이는 어쩌면 얼마나 많은 일을 직접 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판단을 보고 묻고 직접 내려봤는가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AI가 내 손에서 가져간 일이 있다면 먼저 물어봐야 한다. 그 일은 원래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그것을 어디에서 배우고 있는가.
커리어 점선면 AI 시대의 신입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업무가 아니라, 더 많은 판단의 경험이다. |